오래 전, 응답하라의 배경이 되는 것과 같은 시절에 나는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으면 전화를 했었다. 전화 내용은 대개 “야 나 X됐다.” 와 같은 푸념과 신세 한탄. 그게 아니면 “나와라”와 같은 오프라인 만남을 위한 전 단계로써의 연락이 대부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연락과 대화란 얼마나 깊고 풍부했는지…나의 소소한 사건 사고와 그것에 얽힌 길고도 구구절절한 맥락,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전달되는 감정까지도.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를 하면서 하는 대화는 그 자체가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스토리 텔링으로써 때론 감동의 대서사시요, 해학으로 이루어진 블랙 코미디요, 코딱지 만한 문제에 죽느냐 사느냐를 논하는 비극으로 승화되곤 했다. 또한 이것은 혼자서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예술이 아니다. 말하는 친구가 있으면 놀리는 친구, 깐죽대는 친구, 귀기울여 들어주는 친구, 냉정하게 비판해 주는 친구, 적재 적소에서 추임새를 넣는 친구 등이 모두 공동으로 참여해 나가면서 스토리는 삼천포로 빠지거나 술이라도 마셔서 그 폭이 더 넓어진 날에는 종체 감을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치고 빠지고 드러내고 감추는 ‘노가리’라는 이 종합 예술에서 우리들은 각자 참여하는 기쁨을 맛보았고 한 번의 공연이 끝나면 친교가 깊어지며 때론 집에 돌아가서 곱씹으며 서로를 성장시키기도 하였다.
그런데, 초고속 통신망으로 서로가 연결되었다는 요즘, 우리는 헛헛하다. 페이스북에는 내가 보고 싶은 내 친구들의 얼굴이 없고, 카카오톡에는 내가 듣고 싶은 “야 나 X 됐어”와 함께 수반되는 화면 뒤의 표정과 뉘앙스와 맥락과 감정이 없다. 이건 뭐랄까…온갖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가서 국물이 우러난 요리를 먹다가 갑자기 ‘맛’이라는 부분이 제거되고 같은 성분과 함량의 분자 요리로 대체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내게는 모바일을 통해 더더욱 연결되었다는 온라인 관계가 예전보다 훨씬 맛없게 느껴진다. 그리고, 휘발성 메신저나 인원 수가 제한되는 폐쇄형 SNS가 점점 인기를 끄는 작금의 상황을 봤을 때,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맛이 부족한 걸까? 왜 온라인 대화는 여전히 오프라인 대화를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할까? 우리가 넘지 못하는 장벽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기술적인 것인가? 문화적인 것인가? 내 짧은 관찰력으로는 크게 3가지 정도가 부족한 것 같다.
1. 맥락의 부족
장기하 2집 “우리 지금 만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문이 막혔을 때 니가 웃는 지 우는 지 나는 몰라! 몰라~ 몰라~ 나는 절대로 몰라~”
하여 ‘우리 지금 만나’자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비 언어적인 대화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대화(대면)에서 말 대화(전화), 그리고 글 대화(메시징)로 옮겨온 요즘, 우리는 화면 너머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말의 뉘앙스, 성대 모사, 바디 랭귀지, 신체적인 접촉 등등을 다 생략한 채 정보만을 주고 받는다. 결과적으로 대화 자체가 건조해지고 깊이가 없어졌다. 우리들의 카톡 대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요즘 “링크”다. 각종 연예인 찌라시, 쇼핑 정보, 웃기거나 황당한 사건 등등. 어떻게 사는 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 밥은 먹고 다니는 지. 사실은 이런 것들이 궁금한 건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링크들을 교환하며 근근히 연락을 이어간다.
2. 안전성 부족
가장 재미있는 대화는 왠지 어둡고 조용한 구석에서 소수의 멤버가 모여 ‘이 이야기는 절대 다른 데 가서 얘기하면 안된다’라는 단서와 함께 시작된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보라. 이건 숫제 파란 해가 24시간 떠 있는 광장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내가 하는 한 마디마다 귀를 열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멍석 깔아주면 못 노는 우리들은 이런 부담스런 상황에서는 도무지 까불수가 없다. 카톡은 조금 상황이 낫지만 대화는 저장되고 전달되고 캡쳐되고 종종 소파 위에서 무방비 상태로 붕붕거린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왠지 온라인 대화로는 전화만큼 혹은 대면만큼 더 깊고 더 센 이야기가 나오기 쉽지 않다. ‘진실 게임’은 온라인에서는 죽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3. 책임의 부족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카톡에서는 종종 대화가 씹히기도 하고 나도 자주 씹는다. 실제 만난 상황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면 꼭 대꾸를 해주는 것이 룰이다. 그렇지만, 온라인 대화에서는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 룰은 적용되지 않는다. 밧데리가 없었어, 알림이 꺼져 있었어 등등의 핑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즉각적으로 답변을 해야하는 요구에서 겨우 숨쉴 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상대에게 그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온라인 그룹 대화의 경우에는 아이 컨택이 없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태반이고, “나 아니면 누군가 대꾸해 주겠지”라는 생각에 종종 대화는 여러 명의 눈팅 참관 하에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결국 제각각 멤버들의 진짜 생각을 듣고 싶을 때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 뿐이다.
나의 개인적 아쉬움이야 있건 말건 간에 온라인 대화는 빠르게 오프라인 대화를 대체해 나간다. 우리는 종종 왜 주커버그가 말하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도와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왜 서로 멀어지는 거냐고 불평한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이 도구를 바라보게 되면 이것은 사람이라는 빙산의 표층만을 연결해 주는 데에 그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드라이버로 땅을 파봐야 제 손만 아픈 것처럼 잘못된 도구에 잘못된 기대를 하게 되면 실망만 깊어질 뿐이다. 우리들은 여전히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도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방법은 실험이 진행 중이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방법은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맥락을 전달하지 못하게 하며, 안전한 느낌이 안 들며, 누구에게도 책임 지우지 않는 것이다.